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페준타 제국 (문단 편집) === 희망의 시기와 드리우는 그림자 === 동쪽에서 몰려드는 몽골군에 맞서 룸 술탄국은 트라페준타, 조지아 등에 병력을 차출하여 연합군을 꾸린다. [[마누일 1세(트라페준타 제국)|마누일 1세]]는 계속된 차출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으나 1243년, 룸 술탄국이 [[몽골군]]에게 처참히 짓밟히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며 트라페준타 제국의 희망의 빛이 드리우게 된다. 마누일은 우선 1253년, [[프랑스]]의 성왕 [[루이 9세]]에게 사절을 보내 동맹을 청했다. 황제는 프랑스가 다시금 [[십자군]]을 일으켜 룸 술탄국은 물론 니케아 제국까지 쳐부수어주길 희망했으나 루이 9세는 단지 트라페준타와 라틴 제국 사이의 결혼 동맹을 제의해주는 것 이상으로 지원을 보내진 않았다.[* 루이 9세는 1248년 7차 십자군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잡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똑같이 붙잡힌 다른 십자군의 몸값을 마련하는 동안 무려 4년 넘게 중동에 머물러야 했었으니 그 고생을 하고 불과 1년만에 다시 십자군을 일으킬 여력이 있을리가 없다.] 프랑스와의 동맹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마누일 1세는 군대를 소집했다. 1254년, 트라페준타 제국은 40년 전 빼앗긴 시노페에 공격을 감행하여 함락시키게 된다. 몽골의 침공으로 인해 소아시아 지역의 패권이 무주공산 상태에 빠져있어 룸 술탄국과 아바스 칼리파조를 비롯한 모든 이슬람 세력은 이에 대응하지 못했고 되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수도 [[바그다드]]가 파괴당하고 [[아바스 왕조]]는 멸망한다. 아바스의 멸망은 트라페준타 제국에 드리우는 희망의 빛이 되었다. 제국은 직면해있던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바그다드의 파괴 이후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로 이어지던 무역로가 끊어졌는데, 상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페르시아 만에서 호르무즈에 입항하여 몽골 제국령이 된 페르시아를 관통한 후 북상하여 트라페준타에 들어가 거기에서 흑해로 나가는 방법을 택하게 되며 트라페준타 제국에 무역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마누일 1세는 부유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제국을 다스렸고 부를 바탕으로 트라페준타에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누일 1세 치세 말기에 제국의 정통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니케아 제국의 정통 황제 요안니스 4세 라스카리스와 공동 통치를 시작한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가 1258년, 펠라고니아에서 라틴 제국군을 대파한데 이어 1261년에는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로마의 정당한 지배자임을 널리 알린 것이다. 라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빼앗긴 뒤 1년도 안되어 멸망하였고 이로써 로마 제국의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던 대(大)콤니노스의 트라페준타 황실은 명분을 잃고 한낱 트라페준타와 인근 지역의 주권자로 전락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